[기고] 신냉전 속 치열한 자국 우선 ‘신보호주의’ 글로벌 경제전쟁 각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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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신냉전 속 치열한 자국 우선 ‘신보호주의’ 글로벌 경제전쟁 각축
  •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 승인 2024.03.18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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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매일일보  |  1947년 3월 12일 미국 대통령 ‘해리 S. 트루먼(Harry S. Truman)’이 의회에서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의 공산화를 막겠다”라고 선언한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은 냉전체제(Cold War)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아시아에서는 한반도의 남북 대립과 유럽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WTO)가 대립되었다. 하지만 냉전체제는 1969년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으로 해빙무드가 이루지면서 미국과 중공이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1990년에는 독일의 통일, 1991년 9월 17일에는 남북한이 각각 유엔에 동시 가입, 같은 해 12월에는 마침내 소련이 붕괴되면서 냉전이 종식되었다. 이후 중국의 시진핑과 러시아의 푸틴이 장기집권의 독재정치를 하면서 국민들의 시선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다른 나라를 공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그리하여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국가와 러시아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세력이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는 오늘날은 신(新)냉전시대이다. 냉전시대와 다른 점은 베트남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가 중국과 대립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국제정세는 탈(脫)냉전을 넘어 서방세계와 반(反)서방세계, 민주주의와 전체주의가 맞붙는 신냉전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신냉전시대는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부터 미국과 서유럽 등 서구국가들의 대규모 군사적, 경제적 개입과 동시에, 이를 막기 위한 중국, 러시아 등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대륙간 경제경쟁의 시대를 말한다. 신냉전은 선명한 대치 구도가 특징인 냉전보다 훨씬 복잡하게 맞물려 꼬여있고 그 중심에 한반도가 있다. 신냉정시대의 특징은 군사적 대치보다는 경제전쟁이 중심이 되었다. 특히 서방세계는 중국이 이른바 ‘중국몽(中國夢 │ 세계 패권국가를 향한 중국의 꿈)’ 실현을 위한 ‘초한전(超限戰 │ 경계와 한계를 뛰어넘는 전쟁)’에 인민해방군을 비롯해 정보기관과 정보요원들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다지 크지 않다. 경제, 군사, 인권 등 여러 이슈에서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현실로 돌아와서 기업을 가운데 둔 글로벌 경제전쟁은 그 어느 때보다 거세고 치열하다. 자국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외국 기업은 때리고, 조그만 보탬이라도 될 듯싶으면 모시기 경쟁이 치열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대만 병합 위협으로 깔린 신냉전의 판도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 때 시작된 미국의 ‘중국 기업 때리기’는 올 연말 대선이 다가오면서 가속화하고 있다. 2018년 3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다. 우리가 쉽게 승리할 것”이라고 선언한 뒤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매기며 ‘중국 때리기’를 시작했다. 이어 ‘조 바이든(Joe Biden)’ 행정부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인상한 대중 고율 관세를 기존대로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기술 패권 전쟁 속에서 경제안보를 앞세운 ‘신보호주의’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 하원은 지난 3월 13일(현지 시각)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Tik Tok)’을 퇴출시키기 위한 ‘틱톡 강제매각법’을 만정일치로 통과시켰다. 발의된 지 불과 8일 된 법안이 초당적 지지를 얻은 것은 틱톡을 매개로 미국인들의 정보가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안보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가 법안을 통해 소셜미디어 ‘틱톡’을 운영하는 중국 바이트댄스(字節跳動)에게 165일 안에 틱톡의 미국 내 사업권을 팔지 않으면 틱톡의 미국 사업을 사실상 금지시키겠다는 게 골자다. 개인정보 유출과 안보 위협이 이유지만 바탕엔 커져 가는 중국 기업을 솎아내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미 반도체와 배터리, 바이오 분야에서도 중국 기업을 네트워크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의 군사·경제적 우위를 막을 수 있는 조임목(Choke point)은 미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막는 것’이라는 정치적 결정을 내리게 됐고 2022년 하반기 두 가지 중요한 정책을 채택했다. 첫 하나는 2022년 8월 시행된 ‘반도체법(Chips and Science Act │ 반도체 칩과 과학법)’이고, 다음 하나는 미국 상무부가 2022년 10월 발표한 ‘반도체 관련 수출관리 규정(EAR │ Export Administration Regulations)’의 전면적 강화다.

중국 견제의 바통은 유럽연합(EU)이 이어받았다. EU는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위한 「디지털서비스법(DSA)」 시행 초기부터 전방위 압박에 나서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3월 14일(현지 시각)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알리익스프레스가 DSA 규정 다수를 위반한 것으로 의심돼 공식 조사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EU는 빅테크 규제가 주목적으로 알려진 디지털서비스법(DSA) 대상에 틱톡을 포함시키고 조사에 나섰다. EU의 중국 견제는 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 온라인쇼핑몰로 확산되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가 가짜 의약품·건강보조식품 등 소비자 건강을 위협하는 제품 판매를 금지하는 약관을 온전히 이행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DSA는 특정 인종, 성, 종교에 편파적인 발언이나 테러, 아동 성 학대 등과 연관 있는 콘텐츠의 온라인 유포를 막는 것을 목표로 하는 법이다. 특히 DSA는 전자상거래업체부터 검색 엔진, SNS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온라인 플랫폼을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는 만큼, 향후 조사 대상 기업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는 개별 국가 차원에서 ‘쉬인’에 대한 환경부담금 부과 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켰다. 그렇다고 경제전쟁이 자유 진영과 중국 러시아 등 전체주의 진영 대결 구도로만 전개되는 것도 아니다. 지난 3월 14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일본 철강사인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추진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대선 전 표심을 의식한 행보로 보이지만 백악관은 철강 산업의 국가안보적 중요성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EU는 애플 등 미국 빅테크를 주시하고 있다. 자유무역 같은 가치보다는 자국 우선이 더 중요한 잣대다. 우리 정부도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을 겨냥해 칼을 빼 든 가운데, ‘알리익스프레스(알리)’, ‘테무’에 이어 초저가 패션 플랫폼인 ‘쉬인’마저 한국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쉬인’은 최근 한국과 중국 본사의 커뮤니케이션을 맡을 관리자급 직원 채용을 시작했다. 그동안 한국에서 ‘조용한 행보’를 보여 온 ‘쉬인’이 한국 시장에서 발을 넓히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작금의 글로벌 경제의 지배 논리는 자유시장주의가 아닌 자국 이익 최우선주의다. 미국 등 주요국들은 자국 경제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교역과 해외 자본을 통제한다. 국내 산업 보호·육성과 공급망 확보를 위한 정책을 총동원하고 다른 나라에 경제적 압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자원의 무기화와 산업스파이를 통한 기술 탈취도 이뤄지고 있다. 우리 경제는 냉전시대에 비해 지금이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 중심 공급망에 들어가 있다는 이유로 안도해선 더욱 안 된다. 자국 이익을 우선한 ‘신보호주의’ 글로벌 경제전쟁 각축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치열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국 이익 극대화를 위한 ‘신보호주의’ 파고가 급속히 확산되는데도 우리나라에서는 국가 차원의 경제안보 전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기술·정보 유출과 국내 시장 교란 등 우리 경제와 기업을 위협하는 외부의 공세에도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망양보뢰(亡羊補牢)식 솜방망이 처벌과 땜질 대응만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경제안보에 중점을 둔 국가안보 전략을 마련한 일본이나 포괄적 경제안보 전략을 수립한 EU 등에 비해 대외 환경 급변에 따른 위기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능력이 뒤처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이 삼성전자에 60억 달러 보조금을 줄 예정이지만 세계 반도체 질서를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3월 14일(현지 시각)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에 60억 달러(약 7조 9,600억 원)이상의 보조금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보조금 지원으로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 달러를 들여 짓고 있는 공장의 규모를 확장하거나 신규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등의 추가 투자 방안도 검토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습에 미국과 EU처럼 제재로 대응하기도 쉽지 않다. 보복의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적대국의 경제 보복에 맞서기 위한 글로벌 연대를 구축하고 해외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외교력을 발휘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기술 유출에 대해서는 간첩죄를 적용하는 등 추상같은 엄중한 처벌을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입 비중이 80%에 달하는 우리나라로서는 경제안보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새로운 국제 질서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지나친 대외의존 경제 구조는 세계 경제의 중심축인 선진국 경기 둔화가 가시화할 경우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각국의 ‘신보호주의’ 기조 속에서 국익을 지키면서도 주변국과의 통상 마찰을 피할 수 있는 면밀하고 정교한 전략을 수립하고 법과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애써 개발하고도 해외로 줄줄 새는 첨단 기술을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결국 우리 기업이 독자 경쟁력을 갖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정부는 과감한 지원으로 이를 적극 뒷받침 해야 한다. 첨단 분야에선 외국 못지않은 보조금 지원과 세제 혜택, 획기적인 규제 혁파를 해줘야만 한다. 애써 개발하고도 해외로 줄줄 새는 첨단 기술을 지키는 것도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세상에 없는 초격차 기술을 조속히 확보해 ‘신보호주의’의 장벽을 서둘러 허물어야만 할 것이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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