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조선제일검'의 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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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조선제일검'의 근심
  • 조석근 기자
  • 승인 2024.03.2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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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근 정경부장
조석근 정경부장

지난 24일 일요일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관계자들을 만났다. 정부의 대규모 의대 증원에 대한 의료계 반발이 '의료대란'으로 번지고 있다. 강경한 대통령실과 정부, 의료계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떠맡은 것이다. 한동훈이 나선다, 대화가 이뤄진다, 그리고 의료대란은 해결 과정이다, 라는 이미지를 주고 싶었던 것일까.

한동훈 위원장은 "건설적인 대화를 중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고 대통령실은 대통령 본인이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당과 협의해 '유연한 처리' 방안을 모색해달라, 의료인과 '건설적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를 추진해달라"고 주문했다.

많은 이들의 어안이 벙벙하다. 바로 전날까지도 대통령실과 정부는 2000명 증원에서 한치의 양보도 없다는 입장이었다. 정작 25일 의대교수협은 "(한동훈 위원장과) 입학 정원 및 배정은 협의 및 논의의 대상도 아니고 대화하지도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곤 사직서 제출과 외래진료 축소는 예정대로 강행했다.

의대증원 사태처럼 사회적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으면 그 '중재' 역할이란 게 숨 막히도록 지난한 시간과 노력을 요구한다. 대단한 정치력이 필요하다. 그 막중한 역할이 선거 준비에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한동훈 위원장에게 돌아갔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강벨트, 반도체벨트 같은 몇몇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적으로 정권심판 여론이 거세다. 국민의힘 보수 아성으로 여겨지던 소위 '텃밭'들까지 접전지로 돌아섰다. 이런 상황에서 한동훈 위원장이 의료계와의 협의로 귀중한 시간을 소모할 여력이 있을까. 총선은 앞으로 불과 2주 남짓이다.

굳이 한동훈이 아니어도 된다. 인요한 국민의미래 선대위원장이 연대 세브란스병원 교수다.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들이 떠맡아도 된다. 굳이 한동훈 위원장이 투입된 것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총선을 앞두고 당정이 의료계의 대대적인 파업을 또는 의료대란을 의도적으로 유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번진다. 물론 어디까지나 낭설이다.

거센 정권심판 여론에 한동훈 위원장의 리더십이 위태롭다. 지난 12일부터 국민의힘 지도부는 선거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정작 한동훈 위원장의 후보지원 유세가 없는 날만 꼽아봐도 닷새다. 문제의 24일은 물론 그 전날 토요일에도 일정이 없었다. 선거 직전 황금 같은 주말을, 선거 국면의 정당 최고 요인이, 별다른 일정 없이 보냈다는 뜻이다.

공동 선대위원장인 안철수, 나경원, 원희룡 후보는 본인들 지역구 선거로도 벅차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김부겸, 이해찬 3인 상임선대위원장이 모두 분초를 쪼개 전국을 누비는 것과 대조된다. 이들과 홀로 맞서는 '원톱' 한동훈 위원장을 '조선제일검'이라고들 부른다. 조선에서 제일 잘 나가던 검찰 공무원이란 의미가 현실적이다. 제일간다는 검객일 리가 없잖은가. 요즘 세상에.

실제로는 모든 정당의 전면전, 총력전을 의미하는 선거를 이끌어야 하는데 정치 초보다. 선거전은 고사하고 이종섭·황상무 사태, 이제 의대증원 수습까지 동원되는 판이다. 그 일정 공백에조차 심각한 갈등이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여론이 뒤집힌 최근 몇 주 사이 조선제일검의 얼굴에 주름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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