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외국인 근로자 확대, 묘수인가 악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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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외국인 근로자 확대, 묘수인가 악수인가
  • 권한일 기자
  • 승인 2024.03.27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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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일 건설사회부 차장
권한일 건설사회부 차장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인구 고령화와 산업 인력 부족이 국가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건설 현장은 내국인들에게 강한 육체노동이 투영된 '막일'이자 3D(더럽고·힘들고·위험한) 근무 환경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구인난이 두드러진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19로 외국인 근로자 유입마저 쉽지 않았고, 건설 노조 등이 일삼는 각종 횡포와 연대 행동, 인건비 상승 등이 일선 현장 운영과 경영 측면에서 큰 부담으로 지목돼 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는 건설 현장 등에서 외국인 채용 전에 요구되는 내국인 필수 구인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외국인 고용 허용 규모는 대폭 늘리고 있다. 외국인 비숙련 인력을 고용하는 고용허가제(E-9비자)를 통한 인력 유입 규모는 윤 정부 출범 이전 연간 5만명 대였지만 지난해에는 12만명, 올해는 역대 최대인 16만5000명까지 늘렸다.

기업들은 환영 일색이지만 근로자 단체 등에선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기존 내국인들의 일자리 침탈은 물론,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다국적 외국인 근로자들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안전사고와 시공 불량(하자)이 급증하고 건설 현장 인근 치안도 불안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외국인 근로자들의 근로·거주 여건은 여전히 열악하고 사고 발생률도 내국인에 비해 높다. 고용노동부 집계를 보면 외국인 근로자 산업재해 건수는 2012년 6404명에서 2021년 8030명으로, 산재 사망자는 106명에서 129명으로 늘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이주노동자 산업안전보건·정책과제(2020년 기준)'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의 '사망만인율(인구 1만명당 사망 비율)'은 1.39‰(퍼밀리어드)로 산재보험 가입자 전체 평균(1.09‰)보다 높다. '사고재해율(노동자 100명당 발생하는 사고 재해 비율)'도 외국인 노동자가 0.87%로 내·외국인 전체(0.49%)보다 크게 높다.

여기에 최근 정부가 외국인 단순 노무직(E-9)을 고용할 수 있는 업종에 산업플랜트를 추가할 움직임을 보이자, 건설 노조 등 근로자 단체의 반발 수위는 한층 고조되고 있다. 석유화학·제철·발전소 등 산업플랜트 현장은 국가주요시설로써 17년 넘게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없었다.

이 같은 금단의 벽을 허물고 단순 외노자들이 투입되면 기존 내국인 근로자들의 무더기 실업난을 비롯해 폭발·질식 등 대형 사고 발생도 늘 것이라고 노동계는 주장한다.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점진적인 외국인 근로자 확대는 산업계 측면에선 시대적인 요구 사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내국인에 대한 우선 고용 보장과 플랜트 공정 등 기술 설비에 대한 보안 대책이 먼저 수립돼야 한다.

지금도 전국 아파트 준공 현장에서 줄기차게 이어지는 하자 불만과 부실시공 문제를 비롯해 외국인 산업재해 및 범죄 증가 가능성 등에 관한 범정부 차원의 선제 대책과 대응·처벌 방안 등이 나와야 한다. 

열악한 현실과 현장 상황으로 미뤄 볼 때 외국인 근로자 고용 확대는 묘수(妙手)가 될 수도 있지만 악수(惡手)로 전락할 수도 있어 보인다.

건설업은 제조업 등 타 산업군에 비해 기계화·자동화가 매우 더딘 편이다. 여전히 근로 인력의 질이 곧 경쟁력이라는 의미다. 아파트 공화국인 대한민국은 산업플랜트에서 나오는 제품을 수출해서 먹고산다. 이를 짓는 건설사와 인력을 향한 사회적인 관심이 차고도 넘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외국인 단순 노무직을 둘러싼 산업계의 필요와 노동계의 우려가 교차하는 상황에서 이렇다 할 대책도 없이, 사용자 입장만 대변해 '일단 개방'을 주창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 정부가 큰 악수(惡手)를 뒀다는 평가가 쏟아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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