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딸들아 △△ 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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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딸들아 △△ 되지 마라”
  • 송병형 기자
  • 승인 2018.02.2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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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형 정경부장

엊그제 페북에 올라온 한 페친의 글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길지 않은 글이니 모두 올려본다.

“딸에게 ①배우는 되지 마라. 특히 연극판에 뛰어들지 마라. ②군대 가지 마라. ③검사 되지 마라. ④빙상선수 되지 마라. ⑤시인 되지 마라... 미안하다. 뭐가 되라고 말할 게 없구나.”

‘빙상선수 되지 마라’는 대목만 빼면 하나같이 성추행 이야기들이다. 페친의 말처럼 여성에게 있어 우리 사회는 곳곳이 암초다. 이른바 ‘미투 운동’이 확산되는 분야들을 보면 정계, 관계, 법조계, 문화계 등 전방위적이다.

우선 문화계야 원래 말이 많은 곳이기는 하지만 논란의 중심에 선 면면이 문제다. 연극계의 대부라는 연출가 이윤택과 오태석, 교수 타이틀까지 달고 있던 배우 조민기 등을 두고 폭로에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지성의 상징인 문학계의 추한 이면에는 할 말을 잊을 정도다. 노벨상 시즌만 되면 이름이 오르내리던 시인 고은의 감추어진 모습이 드러난 이상 그의 작품에 대한 재평가는 불가피해졌다. 교과서에 실린 그의 시를 읽고 좋아했던 여학생 입장이라면 기가 막힐 일이다.

법조계의 실상은 다른 의미에서 충격이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한국판 ‘미투 운동’의 진원지가 된 검찰은 성범죄에 칼날 같은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곳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조직부터 곪아있으니 법치가 흔들리지 않는 게 다행일 정도다. 이러니 마초 조직인 군대 내에서는 여장교가 성폭력 피해를 입고 자결하는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싶다.

특히 그나마 상대적 강자인 여검사나 여장교마저 피해를 볼 정도라면 조직 내에서 보다 약자인 여성들이 겪는 일상은 어떠할지 우려스럽기만 하다. 지난해 말 국가인권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발생한 군대 내 성폭력 피해 형사사건의 절반가량이 여하사였다. 군대 내 여성 중 가장 약자에게 피해가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여군, 여검사, 여배우, 여류시인이란 게 여성에게 일반적인 직업은 아니니 확대 해석을 경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갈수록 여성이 진출하는 분야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모든 분야 여성들의 문제라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또 실제 직장인 앱에는 성추행 경험을 고발하는 여성 직장인들의 글이 폭증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보면 앞으로 ‘미투 운동’은 갈수록 확산돼 갈 공산이 크다. 그에 맞추어 새로운 제도와 대책도 나올 듯하다.

하지만 진정한 해법이 될 지는 벌써부터 걱정이다. 개인이 아닌 연줄과 파벌에 의존하는 이른바 패거리 문화가 성추행과 끈끈히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누가 키워줘야만 클 수 있는 문화, 다른 사람의 성공을 누가 키워준 결과물로 보는 우리의 의식과 누가 키워주기를 바라며 기대는 개개인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언제나 한국의 부모들은 딸들에게 “△△△는 되지 마라”는 말을 반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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