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쪽지예산은 김영란법 위반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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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쪽지예산은 김영란법 위반 아닌가요?
  • 박규리 기자
  • 승인 2018.12.09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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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박규리 기자] 국회가 지난 8일 새벽 본회의를 열고 내년도 예산안을 늦장 의결한 가운데, 올해도 역시 각 당 지도부를 비롯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실세’들의 쪽지·민원성 예산 증액 구태는 반복됐다. 앞에선 서로 유치원3법, 선거제도 개혁을 놓고 으르렁대며 싸웠지만, 정작 여야 3당 예결위 간사 등 극소수만 참여해 속기록도 남지 않는 소소위에서는 복지예산 1조2000억원을 삭감, 자신들의 지역구 민원 예산(SOC 예산)을 늘리는 뒷거래를 자행했다.

이렇듯 소위 정치계에서 힘 좀 있는 의원들이 지역구에 바치는 '뇌물성 예산'이라고 볼 수 있는 쪽지예산. 특히 최근에는 휴대전화 문자와 카카오톡으로 부탁을 대신 건네 받기도 해 '카톡예산', 'SNS예산'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하니 세금을 내는 국민으로서는 심히 한탄스럽다. 우리가 내는 세금이 제대로 된 심사도 거치지 않고 실세 의원들의 체면치례에 쓰인다니 절망감마저 든다. 이런게 진정 적폐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궁금한 것은 국회의 대표적 구태로 지적받고 있는 쪽지예산이 과연 소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어긋나지 않느냐는 점이다. 실제 '제3자의 민원고충전달'을 예외로 둘뿐 국회의원도 '공직자'로 취급되어 김영란법이 적용된다. 그러나 쪽지예산에 관한 김영란법 위반 여부 판단은 기관마다 다르게, 같은 기관이라도 불명확하게 판단하고 있어 국회의 이러한 구태를 사실상 허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앞서 2016년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기획재정부는 “쪽지 예산은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예산을 반영해 달라는 것으로 그 자체가 부정청탁에 해당한다”고 했다. 반면 김영란법 위반 판정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는 “예산 편성 과정의 일부여서 김영란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예산편성은 청탁금지법의 14가지 부정청탁 대상 직무에 해당하지 않아 부정청탁이 성립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대체적으로 부정적으로 해석했다.

다만 권익위 역시 국민들의 비판을 의식하는 듯 "(예산) 소관 부처의 입장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태스크포스(TF)를 통해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김영란법 위반이 아니다라는 정확한 입장을 밝히고 있지는 않다. 특히 권익위는 앞서 8월 청탁금지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쪽지예산이 청탁금지법 위반일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선출직 공직자가 비공식적으로 특정한 요구(예산반영)를 하는 경우라면 (부정청탁의) 예외사유(제3자의 민원고충전달)에 해당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김영란법은 제안(2012년)된지 3년만에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이 투영되어 지난 2015년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했다. 이후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선 교사들이 김영란법에 걸릴까봐 학부모들이 건네는 따뜻한 캔커피에 놀라 손사레를 치면서 도망갔다는 재밌는 일화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의 쪽지예산을 허용한다면 어느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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